뱀들이 무리지어 살고 있는 연못이 있었다.
어느 여름, 무더위와 오랜 가뭄 끝에 연못의 물이 말라 버리자
연못 속의 뱀들은 결국 다른 연못으로 옮겨가야 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른 연못으로 이동하는 일이 걱정이었다.
이때 작은 뱀이 나서서 우두머리인 큰 뱀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앞장 서고 제가 뒤따라가면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보통 뱀인 줄로 알고 죽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저를 당신의 등에 태우고 가세요.
사람들은 조그만 저를 당신처럼 큰 뱀이 떠받드는 것을 보면
아주 신성한 뱀, 즉 신군(神君)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리고 두려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오히려 떠받들 것입니다."
우두머리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작은 뱀을 등에 태운 큰 뱀을 앞세운 채 뱀들은 사람들이 많은 길로 당당하게 이동했다.
과연 작은 뱀의 말대로
사람들은 큰 뱀이 작은 뱀을 떠받드는 것을 신기하게 여겼고
그 누구도 이 뱀의 무리를 건드리지 않았으며, 뱀들은 목적지까지 아무런 방해 없이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위 이야기는 '한비자'의 '설림(設林)' 편에 나오는
'학택지사(涸澤之蛇)'라는 고사이다.
'학택'은 '물이 바짝 마른 연못'을 의미한다.
한비자는 물이 말라 버린 연못 속의 뱀 이야기를 통해
역설적으로 '섬김의 리더십'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이 고사에 나오는 큰 뱀처럼
'리더'가 '팔로어'를 떠받드는 것은 리더의 권위를 실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리더와 조직의 명예와 권위를 드높여주는 것이다.
이 고사는 '리더'들이 어떻게 '팔로어'들을 대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사실 조직 안에 리더보다 뛰어난 팔로어는 그리 많지 않다.
애초부터 능력이 출중한 부하라면 리더의 자리에 올라섰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이 보든 보지 않든, 자신보다 부족한 부하를 존중하며 잘 대접해 준다면
세상 모든 사람은 그 조직에 경외심을 갖게 될 것이다.
또 팔로어들의 작은 능력도 인정하고 기운을 북돋워준다면
팔로어들의 조직에 대한 애정은 높아질 수밖에 없고, 자연스레 조직의 생존능력은 커지게 되는 것이다.
리더의 안목은 보통 사람들보다 높고 넓어야 한다.
체면이라는 허울에 휩싸여 보통 사람들의 안목과 상식 정도로 조직을 이끈다면
진정 위대한 리더가 될 수 없다.
나보다 못한 팔로어를 잘 존중해 주고 그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인정해 줬을 때
사람들은 그 리더의 사람 보는 눈과 부하를 예우하는 능력에 박수를 보낼 것이다.
'작은 뱀을 등에 업고 거친 들판을 건너가는' '섬김의 리더십'이야말로
'학택지사(涸澤之蛇)'가 요즘 우리의 정치인들에게 던지는 '역발상의 메시지'라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