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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ste의 야기/나의 관심사

[신화시대] 황궁씨 시대-유인씨 시대-한인씨 시대

[신화시대] 황궁씨 시대-유인씨 시대-한인씨 시대

황궁씨가 천산주에 도착하여, 복본을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을 서약하고, 따르는 무리들에게 수증(修證)하여 청정한 몸과 마음을 다시 찾도록 노력하라고 당부하였다.

그리고 큰 아들 유인씨(有因씨)에게 명하여 무리들을 잘 돌보며 인세(人世)의 일을 밝히게 하고, 둘째, 셋째 아들에게는 모든 주를 순행(巡行)하게 해, 마고성에서 분파되어 나온 다른 족속들이 가서 살고있는 곳을 돌아보게 하였다.

 

황궁씨는 곧 천산에 들어가 돌이 되어, 길게 조음(調音)을 울려, 인간세상의 미혹을 남김없이 없앨 것을 도모하고, 기어이 마고대성 회복의 서약을 스스로 이루었다.

이에 황궁씨의 장자 유인씨가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이어받으니, 이것은 곧 천지본음(天地本音)의 상(象)으로, 그것은 진실로 근본이 하나인 것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유인씨가 사람들이 추위에 떨고, 밤에는 어둠에 시달리는 것을 불쌍하게 여겼다. 이에 나무를 뚫어서 마찰을 시켜 불을 일으켜 밝게 비춰주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또 음식물을 익혀서 먹는 법을 가르치니 모든 사람들이 대단히 기뻐하였다.

유인씨가 천년을 지내고 나서, 아들 한인씨에게 천부삼인을 전해주고 아버지 황궁씨의 큰 뜻을 돕고자 천산으로 들어가, 계불을 전수하며 나오지 않았다.

 

한인씨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하늘의 뜻과 이치를 밝히는 일을 크게 이루니, 사람들이 다시 수증하기를 열심히 하게 되었다.

이에 햇빛이 다시 고르게 비추고 기후가 순조로와지니, 생물들이 안도감을 갖게 되었고, 사람들의 괴상한 모습이 점점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이는 3세(황궁, 유인, 한인)가 수증(修證)하기 삼천년에 그 공력이 거의 없어질 만큼 써버렸기 때문이다.

 

안파견(安巴堅)씨는 유인(有因)씨의 아홉 아들중에서 맏아들인데다 황궁(黃穹)씨로 부터 유인씨에게 전수되었던 복본의 수증을 다하여 공력(功力)이 들어나므로 천부삼인(天符三印)을 받게되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라를 세우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때가 기원전 7197년(BC 7197년)이므로 약 9200년 전의 국가이다.

한국(桓國)은 황궁씨와 유인씨에 이어서 세 번째의 시대에 이룩된 최초의 나라이나 복본(復本)을 위한 수증(修證)을 중단하지 않고, 안파견 한인(桓因)께서도 공력(功力)을 더하시니 삼세(三世)로서 햇빛이 고루고루 비추게 되었고, 기후가 순조로와졌기 때문에 생물들도 거의 안도를 찾게 되었으며, 사람들은 불안해 하는 가운데 늘 환경변화에 대처하기 힘든 괴상한 모습들이었으나 점점 달라져서 마고대성(麻姑大城)시대의 사람들과 비슷해지고 참사람의 모습을 찾기 시작하였다. (<부도지> 제10장)

 

 

* 천산주(天山州) : 파미르 고원의 북쪽에 천산산맥이 있고 제일 높은 곳이 천산이다. 지도에 보면 한텅커리산, 한텡수리산 등으로 표시되어 있다. 우리말로는 한덩어리산이다. 현지에서 한텅거리산으로 불린다. 이 지역의 언어가 우리 언어와 유사함. 육당 최남선 선생은 "한단군산(桓檀君山)"으로 보았음. 송호수 교수는 <부도지>에 따라 다시 고찰하여 천해를 천산주 서쪽의 발카하시호(湖)로 보아야만 삼성기 전편에 나오는 "한국(桓國)은 천해동쪽, 천산 북쪽에 있다"는 표기와 일치하게 된다고 주장.

* 본문번역 :『부도지』김은수 교수,『우리역사 일만년』송호수 교수,『부도와 한단의 이야기』지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