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중국) 기록에 한국이 차이나(중국)의 주인이였다는 증거 기록
오랜만에 글을 적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역사를 공부하면서 일본이 우리의 역사를 너무나 많이 왜곡시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좀더 연구를 해보니. 차이나가 일본에 비해 몇 배 이상의 역사를 왜곡시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비슷한 예로 동북아시아 역사날조작업(일명 : 동북공정)이라는 날조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새로운 역사 이야기를 하니까 어떤분들은 공감을 하고 일부 어떤 분들은 근거가 있냐고 반문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러한 근거를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몇 가지 근거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이러한 기록들이 우리 고대사 기록서에 있다고 하면 믿지를 아니하면서 조작된 것이 아니냐고 물어보면서 오히려 일본의 기록이나 차이나 기록에 있다고 하면 인정을 한다는 것입니다. 더 신뢰를 한다는 것이죠.... 너무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의식의 소유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를 일본에서 정확하게 기술했겠습니까? 아니면 차이나에서 정확하게 기록했겠습니까? 모두들 한국의 역사를 왜곡시켜 자기들 유리하게 작성을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가장정확하다고 큰소리로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사대주의에 물들어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저런 것들을 떠나 그래서 오늘은 그런분들을 위해서라도 차이나측의 기록을 가지고 몇가지 설명을 드릴까 합니다.
차이나의 종주국은 한국
간단하게 말하면 소위 차이나(중국)이라는 나라는 시작자체가 한국이 그들의 종주국이었습니다. 즉, 그들의 주인이 한국이었다는 것이죠.
물론 이런 말들을 하면 그 근거없는 망발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현재 차이나(중국)측의 기록을 근거로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차이나(중국)의 기록을 보면 춘추필법이라고 하여 그들에게 불리한 모든 내용을 지워버리고 유리하게 기술을 하는 특이한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사학자 오향청언(吾鄕淸彦)씨는 이러한 사실을 보고
“단군조선이 중원을 지배했다는 것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사마천의 '사기' 25권(차이나의 정사)은 이와 같은 실크로드, 중원지배를 감추기 위한 힘겨운 역사위조였다." ”한나라의 漢이라는 국호 자체도 옛날 3한 조선의 韓이라는 글자를 그대로 빌려 간 것에 불과하다." 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춘추필법이 성행하여도 모든 기록을 바꿀 수는 없는 법입니다.
특히 그들의 고대사 서적을 보면 더욱 명백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서 몇 가지 소개를 해드리고 하는 것입니다.
차이나(중국)의 조상은 삼황오제라고 합니다. 이것은 여러 기록서에 나오는데, 특히 그들이 중국역사의 정사라고 소개하는 “사기”(사마천)에 - 중원역사의 시주를 삼황오제(三皇五帝)라 하는데 복희,신농,황제를 삼황 이라하고 소호, 고양, 고신, 당뇨, 우순을 오제라 한다고 되어 있으며, 夏나라 이전의 오제의 시대가 500여년이었다. 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즉, 차이나의 역사중 명확하게 알려진 역사는 하-은-주-진시황-한-삼국-순으로 흘러오게 됩니다. 그런데, 최초국가라고 알려진 하나라 이전에 이미 삼황오제의 시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차이나의 기록에 무수히 나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전설이 아닌가 하다가 최근 그 유물들이 발견되면서 전설이 아니라 실제였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동이족(東夷)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하나 재미있는 것은 중국학자 서양지라는 사람이 주장한 내용으로 그는 흔히 동아시아의 문명을 얘기할 때 황하문명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는데 그 황하문명은 낙양의 은허에의 채도문화와 산동성의 용산진에서 발견된 흑도문화가 있다. 그런데 그 채도문화와 흑도문화가 다 동이족의 문화이며, 동이는 원시 세문기문화인이고, 송이족이었던 순은 흑도문화의 창시자였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한다. 즉, 황하문명의 주인이 바로 동이족인 것입니다. 최초 황하문명이 발견되고 차이나(중국)에서 엄청난 자랑을 하더니만 갑자기 발굴작업을 중단하고 조용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우리문화거든요.. 지금 그들은 그들문화로 만들기 위해 엄청난 날조작업을 하고 있는 중인것이죠.. 한국학자들은 물론 접근금지되어 있습니다.
삼황오제의 삼황중에 복희, 신농은 아직도 차이나에서는 전설로 대부분 알려지고 있으나, 우리측 기록에는 명백하게 나와있습니다. 태호 복희는 5대 태우의 한웅천황의 5번째 아들입니다. 차이나는 그때는 아직 미개해서 우리 왕자들을 보내서 다스렸기 때문에 당시 차이나 인들은 그들을 신처럼 우대하였던 것이죠.. 그래서 많은 신화가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면 우습죠..
신농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특히 삼황중에 차이나인들이 최초의 황제라고 보고 있는 황제헌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황제헌원
여기에서, 사기의 기록을 보면 중원의 시조가 삼황이고, 최초의 제왕은 황제인데, 그 황제 헌원의 출신지가 바로 유웅국의 수구이고, 그아비는 소전이고 그의 차자(次子)였다고 한다.(사기)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유웅국이 어디냐? 사기에는 유웅국이 산동지방의 제후국이라고 나옵니다.. 그러면 제후국이 있으면 종주국이 있어야 하는데 그 종주국이 과연 어디냐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유웅국은 우리가 얘기하는 웅족으로 단군의 어머니인 웅녀의 출신국이라는 것이죠..
또한 그 시절에 존재한 역사적 인물로는 치우천왕이 계시는데 그 분을 사기에서는 구려(句黎), 구이(九夷)의 군주였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동이(東夷)가 구이(九夷)로 확장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사기 오제본기에 의하면 치우가 동이조상 환웅이 거느렸던 풍백과 우사의 도움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치우가 우리의 배달국 한웅님들 중 한분인 14대 천황이신 자오지 환웅님이신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것으로 볼 때 산동성지방이 구이의 주 활동무대인 것을 감안하면 유웅국의 종주국은 구이임을 알 수 있는 것이죠.
즉, 차이나의 최초 황제라고 하는 황제헌원도 원래 차이나족(지나족)이 아니고 동이족이었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삼황오제는 현재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한족(漢族)의 조상이아니라, 동이족이었다는 것을 여러 사서에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대황지 가운데 불함산이 있는데 그곳에는 숙신(동이의 이두음법)씨가
흰옷(백의)를 입고 사는 곳이 있다. 숙신의 기상이 용맹한 사람들이 있기에 중원의 삼황오제는 숙신에서 배출된 인물이다.> 中國最古인문지리서 산해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대북대 서양지 교수는 지금부터 4천년전인 은대이전 뿐만아니라, 은대이후의 주나라, 춘추전국시대까지의 중원도 동이의 활동무대이다. 산동,강소,안휘,호북,하북,발해,요동지방과 조선반도가 그 영역이고, 그중에서 산동지방이 활동의 중심지이다. 라고 말하고 있죠...
중국 본토학자 왕동명은 천산산맥과 곤륜산 사이 타리무분지의 티벳지방에서 한족이 중원지방으로 이동하기 전 호북,호남,강서,절강,강소 지방은 묘족(苗族)이라 일컫었던 구려족이 점령하고 있으며, 묘족의 군주는 치우였다. 라고 한다. 치우는 곧, 옛 천자(天子)의 이름이다. -사기 -
중국고금지명대사전(中國古今地名大事典)1102페이지를 보면 춘추전국시대의 막을 내린 진을 멸한 한고조의 유방이 세운 나라가 한(漢나)라인데 그 도읍을 장안으로 했으며, 그곳은 옛날 티벳지방의 한족이 중국으로 이동하여 들어오기 이전에는 조선땅이었다고 명기 되었있습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중국의 의한 우리의 중화숭배사상은 실제로 2000여년전일이고, 여기서, 우리가 중국의 지배자였다함은 그이전 5000년이 훨씬 넘는 기간이었습니다. .지배라는 것이 꼭 땅을 점령하여 섭정을 하는것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적으로 간섭을 당하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가 티벳지방의 한족을 지배하고 중원의 패자였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역사를 모르는 문외한이나 하는 말로 치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같이 우리가 알고있는 우리의 고대사 서적인 한단고기나, 규원사화를 굳이 애기 하지 않아도 증명이 되는 셈이다.
참고로 (1977.7. 14일자 중공 '광명일보')에 중공의 유명한 고고학자 당란이 산동반도 지역에서 남한 넓이 만한 광대한 지역에 이르는 대문구 문명권을 발견했으며, 결국 이들은 문자를 사용한 고도의 문명 국가이며,
통치자 이름 : 소호씨(少昊氏)이고, 방사선 탄소 측정 결과 5785년전(단군 건국보다 약 1500 년 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자랑을 한 것이죠.. 즉, 단군이전시대에 벌써 중국에서는 이렇게 엄청난 문명국이 있었다는 것을 자랑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왜 그들은 그들의 문화라고 하면서 잘 모르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참 재미있는 것이 결국 계속 연구를 하다보니까.. 통치자가 소호금천씨라는 것 까지 알게 되어 버린 것이죠..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 차이나의 고대 서적중에 고사변(古史辯)(중국 서적)이라는 곳에 소호금천씨는 동이계야 (東夷系也), 동이지인 (東夷之人)이며, 태호 복희씨 (伏犧氏), 여와씨 (女蝸氏)도 모두 동이족이라고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그 뒤로는 다시는 신문이나 언론에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훌륭한 문명이 발견되었는데, 왜 조용히 있을까요.. 물론 지금 날조작업중입니다..
그들이 신으로 알고 혹은 최초 그들 국가의 임금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바로 우리 조상들이며, 왕자들 혹은 신하들을 파견 보내 다스렸다는 것이죠..
그런데..
왜? 이런 어처구니 없는 말들이 나올까요? 그것은 중화숭배사상이기 때문입니다.. 맹자도 동이족이라는 사료가 있는데, 우리가 왜? 우리의 역사를 이렇게 모르게 되었는지... 멀리보면 중국의 눈치를 본 중화사상의 고려로부터 조선의 유학자를 시작으로 역사가 짧은 일본이 우리를 지배하려다보니, 그 패배감에서 나온 , 우리역사의 은폐조작이 그 주된 원인일 것입니다. 그러니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를 못해서 생긴 소치이니 무지를 탓하기보다는 제대로 이해를 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되는 것이죠... .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지난간 세월을 주워담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통해 미래를 알 수 있고, 또 올바른 비젼을 세우려 함일 것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한인(12한국),한웅.단군의 훌륭한 통치이념인 홍익인간,이화세계가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언제까지 외면을 해야 하는지 안타깝습니다.
김구선생님의 말씀처럼 그 정신을 통해 21세기의 정신지도자국으로 가야하는 것이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이자, 책임일 것입니다.
앞으로도 알려지지 않은 많은 기록들이 밝혀질 것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러한 사실들을 대부분 일부 차이나의 양심있는 학자들 사이에서 연구되어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주도해서 우리가 찾아 나설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다음은 앞에서 소개한 치우천황에 대해 이야기 할까 합니다.
붉은 악마의 화신 치우천황 중원대륙을 달리던 배달국의 기상..
그기에는 치우천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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