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amaste의 야기/뇌 이야기

치우천황과(한국) 황제헌원(지나)의 최초 전쟁 “탁록대전”

치우천황과(한국) 황제헌원(지나)의 최초 전쟁 “탁록대전”

 

지나(중국)가 황제와 천자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고자 시도한 것은 배달국 14대 환웅(기원전 2667년)인 치우환웅 대에 공손헌원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당시 배달국의 신하로서 지나(지금의 중국)인들을 다스리도록 파견된 자였으나 스스로 천자가 되려는 야심을 가지고 황제라 스스로 칭하고 자주 나라를 침범하여 10년 동안 73번의 싸움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매번 싸움할 때마다 싸움에서 진 헌원이 계속 야심을 버리지 못하고 나라를 침범하려고 하기에 결국 치우환웅은 군사를 이끌고 몸소 전투에 참가해서 탁록의 유웅이라는 벌판에서 헌원을 격파하니 이 전투를 '탁록대전'이라고 합니다. 이 싸움에서 대패한 헌원은 천자의 꿈을 못이루니 지나에서 후에 그 소원을 이룬 사람이 “진시황제”로 시황제는 황제가 시작 됐다는 뜻입니다.

 

어떤 기록에 의하면 헌원은 치우천황과의 동문수학으로 어릴때 같이 수련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치우는 대를 이어 황제가 되고 헌원은 지나인들을 다스리는 신하로 파견을 간 것이죠.. 그런데, 지나인들의 세력이 크지가 욕심이 발생한 것이죠..

 

[신시본기]에 의하면 '치우천황은 전군을 81군으로 나누어 정돈하고 갈로산의 철광을 캐어 칼과 창, 갑옷, 그리고 활을 만들어 무장하고 연전연승 질풍과 같이 쳐들어 가니. 이에 적의 시체가 들에 가득찼으며 서토(지나)의 백성 모두 무서워 숨지 않는자가 없었다. 일거에 적도 (適都)탁록을 함락 시켰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중국 사마천의 [사기]에는 '치우는 옛 천자의 이름이다. 짐승의 모습을 하고 사람의 말을 하는데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銅頭鐵額)를 가졌다' 했는데 이는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은 모습을 처음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지나인들에게 마음대로 우레와 비를 일으켜 능히 산과 물까지 능히 바꾸는 신통력의 소유자로 알려졌습니다.

 

[한서지리지]에 의하면 치우천황의 능은 지나(중국) 산동성 동평군 수장현 권향성에 있는데 능의 높이가 7척으로 진나라와 한나라 때 주민들이 매년 10월에 제사를 올리는 것이 관례였다 합니다.

이렇게 치우천황이 10여년 동안 황제 헌원을 압도적으로 물리치고 만고의 무신(武神), 군신으로 추앙되었는데 역대 단군 뿐 아니라 중국 한고조인 유방까지도 군사를 일르킬 때마다 그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지나에서 최근에 주장하는 것 중에 하나는 탁록에서 헌원이 치우천황을 죽였다고 하는데, 우리 기록에 의하면 그게 치우천황이 아니고 치우천황 장수중에 ‘치우비’라는 자가 있었는데 헌원을 먼저잡으려는 욕심으로 잘못하여 탁록에서 죽었다고 되어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지나인들은 치우비가 치우천황이라고 과대포장하여 주장하고 있는 것이죠..

 

치우천황은 황제헌원을 물리친후에 그를 죽이지 않고 당시 배달국의 살아있는 신선으로 불리었던. ‘자부선인’에게 가서 다시 수련을 시켰다고 합니다. 일종의 잘못된 것을 정신수양을 통해 깨우침을 주려했던 배려인 것이죠.. 결국 헌원은 여기에서 “자부선인”으로부터 하늘의 이치를 깊이 깨우치고 그 유명한 세계 최초 의학서라고 불리는 “황제내경”을 저술하게 된 것이죠..

그 황제내경은 지금도 그 깊이에 현대 의학계가 연구중에 있는 책이죠

 

치우의 용맹에 질린 지나인들이 두려움과 함께 동이족을 비하 하려는 의도로 도깨비로 묘사하기에 이르렀고 우리도 언제 부터인가 치우천황은 사라지고 도깨비만 남게 된 것입니다. 불교가 들어온 뒤에는 절 입구에 사천왕이라는 수문장이 되기도 했으며 오늘날에는 와당에, 장승에, 전철에나 남아 있을 뿐 입니다.

 

중요한 것은 황제 헌원은

배달국에서 야만적인 지나인들을 교화시키도록 치우 천왕이 파견했던 배달족 중의 하나로 배달국의 제후나 총독과 같은 관리였음을 다시 새겨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황제가 치우 천왕을 배신하고 자신이 천왕이 되려고 독립 전쟁을 하다가 치우천왕에게 혼이 났던 것이지요.

 

지나(중국)에서는 황제헌원을 지나(중국)의 시조로 보고 있으며 성인으로 모시고 있는데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잃어버리고 치우환웅의 이름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기에 도깨비 형상으로 밖에 남아 있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도 그것조차 의미를 모른채 말입니다. 지난인의 조상으로 빼앗기고 있는 이 와중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