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밝은 해)는 어떤 나라인가?
고구려(BC 37~AD 668년)의 숨결을 이어받아 나타난 나라가 발해(AD 698∼926년)입니다. 발해는 한창 때는 오히려 고구려의 땅보다 더 넓은 국토를 가진 해동의 번성한 나라[海東盛國]로 수도를 5개나 둘 정도로 강대한 나라였습니다. - 5경(京) 15부(府) 62주(州) — 그 강역은 중국 둥베이[東北] 지방 동부·연해주·한반도 북부에 걸쳤으며 15대로 이어갑니다.
신흥 통일세력인 남쪽의 신라와 그 뒷배를 봐주는 세계 최강의 당나라 사이에 끼인 채 주변의 여진, 거란, 말갈 기타 군소부족의 사활을 건 견제를 받아가며 패배감에 쌓인 고구려의 유민과 미개했을 변방의 흑수말갈족을 모아 세운 나라입니다.
그야말로 다 식은 재를 헤집고 되살아난 작은 불씨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이스라엘과 미국의 사이에 끼인 팔레스타인과 같
고, 그 지도자들은 얼마 전 세상을 뜬 아라파트와 같이 곤고하기 짝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작고 힘없는 발해의 수직적 성장을 가능케한 국가의 동력비전은 고구려를 꼭 같이 닮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발해 태조 대조영 (大祚榮)께서는 당(唐)에 의해 모두 불태워진 고구려로 이어 온 한민족의 역사를 복원하라는 추상과 같은 명령을 자신의 동생 대야발(大野勃)·반안군왕(盤安郡王; 압록강 부근의 옛 지명)에게 명하고, 대야발은 12년에 걸쳐 돌궐을 두 번이나 왕래하면서 그 찬연했던 역사를 복원하면서 다음과 같이 소회를 말합니다.
“신이 외람되게 말학에 불과함에도 감히 임금의
명을 받들었으되
재능은 한계가 있되 도는 무궁하여
마음은 하려하나 입이 따르지 못 할지며,
비록 뜻을 풀이함에 있으나 단지 높은 산에
티끌을 더하는 정도이고
거대한 못에 이슬방울을 더함에 자나지 않습다.”
天統十七年(715) 三月三日반안군왕 대야발
마치 고구려가 고조선의 땅과 정신을 다 물려받자는 것과 같이 발해는 고구려의 땅과 정신을 다물려받자는 것이 발해立國의 의지로 다물 정신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고구려가 동명성왕의 건국 2년 만에 최초로 송(宋)양왕의 비류국(고조선의 거수국)을 정복하고 그 지역을 다물도라 이름 하였으니, 다물의 뜻은 다음과 같이 선연합니다.
“先世의‘땅’을‘물르’는 첫 공(功績)임을 기하기 위하여
‘復舊土’의 義로‘다물’이라 하였으니‘, 多’는‘地’의 義
‘따’를 역(譯)함이요‘, 勿’은‘還買’의 義‘물르’를 역(譯)
한 것이다. 잃었던 땅을 물러온 이 일(事)이 고구려 건국의 최초사업일
뿐만 아니라, 잃었던 땅을 물르자는 것이 곧 고구려 입국의 근본 종지이다.”
정인보 - 조선사연구
고조선의 영토의식이 고구려로 이어져 발해로 계승되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땅에 깃든 사람들의 문화, 역사, 철학으로서국호를 발해, 즉‘밝은 해’라고 삼은 의미입니다. 발해라는 이름은 고구려의 하늘사상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 강하고 당당한 역사는 밝은 홍익철학에 따른 최고의 교육에서 가능했던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고구려에는 고조선으로부터 이어온 만백성을 가르치는 참전선인(參佺仙人;하늘의 뜻-경전을 민중에게 알림)과 몸으로 나라를 지키는 조의선인(早衣仙人;하늘을 대신하여 몸-무예를 닦아서 나라를 지킴)이 있었고, 발해는 고구려의 계승자로서 고조선과 고구려의 역사를 복원하며, 또한 인간으로서 하늘에 이르는 인간완성의 도리를 교육하고자 한 것입니다.
乙巴素는 연소하고 영준하고 잘 생긴 자를 뽑아서 선인도랑(仙人道郞; 道令)으로 삼았다.
그들 중에서 교화를 맡아보는 자를 참전이라 하였고 무예를 맡아보는 자를 조의라 하였다.
이들을 선인(仙人)이라 하였다.
- 한단고기 태백일사
그러한 발해의 역경어린 개국의 주인공인 대조영(大祚榮)께서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의관을 정제하고 몸과 마음을 닦는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으시면서 이와 같은 기록을 남깁니다.
“향불을 피우고 꿇어 앉아 삼일신고를 읽으니
이로서 느낌과 호흡과 촉감(三途)이 고요해지고
맑아지도다.
바라옵고 비옵나이다. 부디 모습과 소리 없으신 가운데 (하늘이시여)
옆에서 감싸시고 도우시어 떨어짐이 없고 무너짐도 없게 하옵소서.”
天統十六年十月吉日題
그런가 하면 고도로 절제된 수행자로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짐이 대업을 계승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늘 조심하고 삼가 왔으나
사방이 막힌 듯 깜깜하고 그릇됨이 달라붙으니,
어떻게 하여야 이로부터 벗어나(하늘과 하나 되는 경지로)오를 수 있으리….”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柳得恭;1748~1807)은 발해고를 저술하며 이 옛 땅의 소중함을 피 끓는 심정으로 통탄하였거니와 이는 지금의 간도협약으로 드러난 현재 후손의 우매한 역사의식을 다음과 같이 통렬하게 꾸짖고 있습니다.
? 유득공의 서문
고려가 발해사를 짓지 않으니, 고려의 국력이떨치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중략 —
무릇 大씨(대조영)는 누구인가? 바로 고구려 사람이다. 그가 소유한 땅은 누구의 땅인가? 바로 고구려의 땅으로, 동쪽과 서쪽과 북쪽을 개척하여 이보다 더 넓혔던 것이다. 김씨가 망하고 대씨가 망한 뒤에 왕씨가 이를 통합하여 고려라 하였는데, 그 남쪽으로 김씨의 땅을 온전하게 소유하게 되었지만, 그 북쪽으로는 대씨의 땅을 모두 소유 하지 못하여, 그 나머지가 여진족에 들어가기도 하고 거란족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이때에 고려를 위하여 계책을 세우는 사람이 급히 발해사를 써서, 이를 가지고“왜 우리 발해 땅을 돌려주지 않는가? 발해 땅은 바로 고구려 땅이다”고 여진족을 꾸짖은 뒤에 장군 한 명을 보내 그 땅을 거두어 오게 하였다면, 토문강 북쪽의 땅을 소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이를 가지고‘왜 우리 발해 땅을 돌려주지 않는가? 발해 땅은 바로 고구려 땅이다”고 거란족을 꾸짖은 뒤에 장군 한 명을 보내 그 땅을 거두어 오게 하였다면, 압록강 서쪽의 땅을 소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끝내 발해사를 쓰지 않아서 토문강 북쪽과 압록강 서쪽이 누구의 땅 인지 알지 못하게 되어, 여진족을 꾸짖으려 해도 할말이 없고, 거란족을 꾸짖으려 해도 할 말이 없다. 고려가 마침내 약한 나라가 된 것은 발해 땅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니, 크게 한탄할 일이다.
— 후략 —
아, 문헌이 흩어진지 수백 년이 지난 뒤에 역사서를 지으려 해도 자료를 얻을 수 없구나. 내가 내각의 관료로 있으면서 궁중도서를 많이 읽었으므로, 발해역사를 편찬하여 군, 신, 지리, 직관, 의장, 물산, 국어, 국서, 속국의 九考를 만들었다. 이를 世家, 傳, 志로 싣지 않고 考라 부른 것은, 아직 역사서로 완성하지 못하여 정식 역사서로 감히 자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갑진년(1764)윤3월 25일
피를 토하는 듯한 유득공의 말대로 우리가 현재 만주로 인식하는 압록강, 두만강 이북의 땅은 우리 민족의 발원지이며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영토인 것입니다. 이 땅은 바로 근대 조선 말까지도 청(淸)과 영유권을 놓고 분쟁상태였으나, 간도라는 명칭으로 부르며 우리가 개척하고 실질적 영유권을 행사했던 분명한 우리의 영토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외교권을 강탈한 일제는 청과 간도협약을 맺으면서 청으로부터 만주철도부설권, 광산 채굴권 등의 각종 이권을 얻는 대가로 간도 땅을 청에 넘겼고 오늘날까지 중국이 영유권을 행사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55개 소수민족을 포괄하고 있는 중국에게는 신장 위그루, 티베트, 내몽골, 연변 등 소수민족 자치구의 분리 독립 위협이 가장 큰 국가적 장애 요소 입니다.
이에 중국은 과거 무력 점령한 티베트와 신장, 내몽골지역을 중국사에 포함시키는 서북공정을 완성시키고 한·중수교 이후 동북3성의 조선족 문제와 만주, 간도의 역사적 연원을 둘러싼 불안 요인이 대두되자, 이 지역의 혼란을 막기 위하여 동북공정을 시작한 것입니다. 영유권 분쟁이 다시 제기될 것을 미리 인식하고 이 지역에 대한 역사적 연고를 확보하고자 본격적인 역사왜곡에 나선 것입니다.
국가간 영유권 분쟁의 암묵적 시효가 100년으로 통용되고 있는 시점에서 (2009년 간도협약 체결 100주년) 우리는‘발해의 고토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범민족적인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발해는 그 땅으로서의 가치와 함께 한민족의 철학, 문화, 역사의 뿌리로서, 패권적인 중국의 중화사상과 비교될 수 없는, 세계 최고 평화사상의 산실이기 때문입니다.
발해는 천, 지, 인 합일사상을 따라서 인간완성의 구체적인 방법을 명쾌하게 제시했던 세계 유일의 삼일신고(三一神誥)의 나라이며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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