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어떤 나라일까?
중국이 후진타오 주석(2002년 2월, 당시 부주석)의 비준을 거쳐, 중국 사회과학원과 동북 3성이 연합해서 총 3조원이란 어마어마한 예산을 쏟아 붓는 정식 국책사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동북공정이라는‘고구려 역사 왜곡’프로젝트입니다.
왜 중국은 우리 민족의 강력한 반발이 있을 것임을 알면서도 고구려 유적을 정비하여 고구려는 현재 중국영토에 존재했었음으로서 중국의 역사라고 터무니없이 강변하고 있는 것일까요? 중국이 고구려의 역사를 강탈함으로써 현실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동북 3성과 간도에 대한 지속적인 영유권과 나아가 한강 이북의 북한 땅에 대한 정치적, 물리적 지배력입니다.
이런 현실적인 이익을 뺏기게 됨과 동시에 우리가 더욱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고구려 역사가 갖고있는우리겨레의문화적, 정신적 정체성입니다.
고구려 역사를 잃어버릴 때에 고구려의 계승자였던 발해와 고려의 역사까지도 자연히 중국의 역사로 귀속되고, 고구려 이전의 단군조선의 역사까지 빼앗기게 되어, 우리의 역사는 존명사대를 국시로 세웠던 조선시대 500년으로 축소되고, 대륙을 호령했던 웅대한 고구려의 혼과 기백은 끊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금에 우리 국민들이 보여주었던 고구려에 대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고구려지킴이 활동은 우리 겨레의 뜨거운 가슴속에 아직 고구려의 혼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고구려인들이 즐겨 불렀던 고구려의 노래를 통해 고구려인의 기백을 함께 느껴봅니다.
? 고구려의 노래
오호 어리석은 한(漢)나라 어린애들아
요동을 향하지 마라. 개죽음이 부른다.
문무(文武)의 우리 선조, 한웅이라 불렀느니
자손들은 이어져서 영웅호걸도 많단다.
주몽 태조 광개토님
위세는 세상에 울려 더할 나위 없었고,
유유 일인(一仁) 양만춘은
나라 위해 몸 바꿔 스스로 사라졌다.
세상 문명은 우리가 가장 오래니
오랑캐, 왜구 다 물리치고 평화를 지켰다.
유철(漢무제).양광(隋양제).이세민(唐태종)도
보기만 해도 무너져서 망아지처럼 도망갔다.
영락기공비(永樂紀功碑:광개토대제비)는
천척 만 가지 기가 한 색으로 태백은 높단다.
과연 이처럼 고구려가 동북아시아의 패권국가로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기마민족의 연맹체로서 강한 군사력 때문이었을까요?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교역의 독점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수레나 맥궁 같은 앞선 과학기술 때문이었을까요?
우리는 고구려에 대해 핏줄로 내려온, DNA 속의 기억으로 가슴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기는 하지만, 막상 고구려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고구려에 대해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고구려는 학자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AD668년에 나당연합군에 멸망당하기까지 최소 700년에서 또는 900년 동안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유지한 나라였습니다. 그에 비해 중원 땅에서는 춘추전국시대에서 진, 전한, 후한, 위·촉·오 삼국시대, 위·진·남북조, 수, 당에 이르기까지 36회의 피비린내는 정권교체가 있었습니다.
고구려가 이렇게 상하가 단합되어 국론이 분열되지 않고 안정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국가에 뚜렷한 비전과 중심철학, 그리고 리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구려의 비전은 고구려의 개국시조 동명성왕의 연호에서 알 수 있듯이‘다물’(多勿)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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