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고대사가 사라진 배경2 (고구려가 문을 닫고)
앞에서 우리는 고조선이 문을 닫은 이후에 진시황이 중원을 통일한 후에 “분서갱유”를 통해 우리의 찬란했던 모든 역사를 말살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원에는 이러한 기록이 지금도 별로 없으며, 그래서 지나인들은 현재 중원 대륙의 어떤 고대 문화재가 발견이 되어도 이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감추는 경우가 오히려 많으며, (예: 황하문명 등, 황하문명도 우리의 문명임.) 현재 자기 것으로 조작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과거 우리의 문화였기 때문입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고고학자들이 우리 반도에서 우리의 역사를 찾을 것이라고, 조사를 하는 것 보면 정말 안타깝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고조선 이전에는 반도에 살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민족이 항상 그 자리에서 살았던 민족은 없었습니다. 즉, 세계의 모든 민족이 과거에 이동하여 왔다는 것이죠..
즉, 우리는 9천년을 중원에서 살았고, 반도에 들어온지는 1천년밖에 되지 않은 것이죠.
지금 현재 우리 학자들의 현 실태를 보면, 우리 반도(반도국가라는 용어도 일본이 우리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만든 용어임)에서 청동기 물품을 하나 발견하면 연대측정을 하여, 아!~ 이시기에 우리가 청동기 시대였구나 하고 추측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고조선이 청동기 시대라는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하면서 자기네들이 실증사학이라는 이상한 소리들을 하곤 하죠..
참고로 고조선 이전인 배달국(천황들이 다스리든 시대: 1대 천황은 한웅천황)시대의 14대 천황인 치우천황(붉은악마의 주인)이 이미 철을 사용했다고 기록에도 나오는데도 말이죠.. (그리고 구석기- 신석기 - 청동기 - 철기 등의 순서로 발달한다는 것 조차도 잘못된것임 이것은 서구적 발상)
즉, 5천년 이전의 중원대륙의 모든 문화는 우리의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당시 현재의 지나(차이나)인들은 그곳에 살지도 않았고, 서쪽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지나 혹은 서토인이라 불렀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뒤에 고조선이 문을 닫고 바로 이어 북부여와 이를 이어 고구려가 일어나게 되면서 삼국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때는 물론 우리의 정통성이 많이 사라진 뒤가 되겠지만, 그래도 그 정통성을 이어 받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3국 모두가 환인 7대, 환웅 18대, 단군 47대를 모두 우리의 선조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것은 속일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고구려, 신라, 백제는 반도가 아니라 중원대륙에서 최초에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이 우리가 원래 살던 곳이기 때문이죠..
최근 새로운 발견에 의하면, 신라도 1천년 역사중에 500년을 중원에서 있었고 뒤에 500년은 반도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다음에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보면 너무나 생소한 이야기로만 들리고 믿기지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만큼 우리의역사가 왜곡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천천히 설명하겠습니다.
그럼 우리의 고대사가 사라진 두 번째 큰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2. 고대사가 사라진 두 번째 이유! : 당나라의 모략
(고구려가 멸하자 당나라는 가장먼저 고구려 서가를 불태우는데,,)
즉, 분쟁으로 결국 고구려가 망하게 되는데, 재미있는 것은 고구려가 망한 기록을 보면 당나라가 제일 먼저 한 일이 고구려의 서가(오늘날 국가 도서관)를 태우는 것이었다고 하네요. 기록에 의하면 그 서가가 다 타는데 3개월 이나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주위의 역사서를 모두 태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구려가 강대했던 이유는 우리의 역사를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였기 때문에 그만한 자부심을 항상 지니고 살았기 때문이죠.. 서가가 타는데 3개월이나 소요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자료를 보관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연구하였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학문이 성행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지금 서울대 도서관을 태워도 3개월은 가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은 이때 너무나 많은 역사와 우리의 얼(정신)까지 잃어버렸습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시에도 사실은 중원대륙에 있는 것들만 태웠기 때문에 동북아에는 그래도 많은 자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구려가 멸망하자 이제 모든 자료가 태워져 버렸습니다.
일부 신라에만 내려오게 된 것이죠.. 물론 뒤 이어 발해(대진국)가 등장하지만, 이때 소실된 그 많은 방대한 자료들이 현재 제목으로만 기록이 이곳저곳엣 나오고 실제로는 없는 것들이 이때 소실된 것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나인들은 철저히 우리의 역사를 없애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사실 우리의 역사를 왜곡시킨 것은 통상 일본이 그랬다고 하는데 일본은 지나인들이 행위에 비하면, 10분이 1도 안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지나인들의 숨어있는 모략을,,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역사가 왜 중요하냐하면, 고구려가 멸망후 당시 당나라에서 고구려민 20만명을 현재 배트남쪽으로 이주를 시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최근에 발견된 것이 베트남 쪽의 “가우족”이라고 있는데, 우리와 전통문화가 비슷한 것이 너무나 많다고 합니다. 이들이 바로 고구려 후손이라고 현재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스스로 가우족(고구려족)이라고 알고는 있는데 이유를 모릅니다. 그 위대했던 고구려의 역사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미개인처럼 그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려워도 그들이 스스로 위대한 한민족의 후예, 고구려이 후예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면, 상황은 바뀌었을 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즉, 두 번째 우리의 고대사가 사라지게 된 것은 바로 고구려 멸망과 동시에 당나라에 의해 치밀하게 자행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신라는 정통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외세를 이용한 것은 절대적인 실수라는 것이죠.. 이러한 현상이 후세에도 또다시 전달되어 조선시대말에 동학혁명을 청나라의 힘을 빌어 조치하려가다 일본이 함께 참여하여 결국 일본에 얼과 국토를 빼앗기게 되는 전철을 다시 밟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못 배운 것 중 하나는 고구려때 우리 영토가 엄청 넓었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이건 또한 착각입니다.
고구려의 건국이념이 “다물”이라는 것입니다. 다물이라는 것은 옛것을 되찾자는 것이죠.. 다 물려받자는 것입니다. 아니 고구려 영토가 그렇게 큰데 뭘 더 찾자는 것이지요? .. 이전에 치우천황시절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큰 규모였고 그 이전에는 환국시대의 나라 크기에 대한 표현은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왜식학자들은 당시 길이 표현을 잘 못했을 것이라 말을 합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표현을 하였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표현으로 예를 들어 어디까지 가기 위해서는 말을 달려 200일을 가야 하고 그기서 다음 나라까지 가기 위해서는 또다시 말을 타고 150일을 가야하고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말타고 300일을 갈 정도면, 그 크기가 이해가시죠? 그 길이가 정확하다는 것이죠..
엄청난 사실이죠..
우리의 역사가 사라진 이후 우리는 정말 지나(중국)의 속국으로만 살았습니다. 그러니 이미 몸에 속국으로서의 행동이 몸에 자기도 모르게 습관화 되어 버렸다는 것이죠. 이제는 복원시켜야 합니다.. 이제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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